“세포를 만지기 전에는 알코올로 꼭 손을 소독해야 해요.”


10일 오후 1시30분 서울 신촌 연세대 의대 생리학교실 실험실. 강혜연 뇌질환시냅스연구실 연구원은 실험 중인 신경세포를 학생들이 직접 볼 수 있게 도와줬다. 단기 기억과 관련된 해마를 이루고 있는 신경세포다. 

한 명씩 형광현미경으로 신경세포체를 들여다본 학생들은 ‘우와’라며 탄성을 쏟아냈다. 서인우양(16)은 “꽃이 핀 것처럼 예쁘다”며 “사진으로만 보던 세포체를 실제로 보니까 신비롭다”고 말했다. 곧이어 형광이 입혀진 뉴런도 관찰했다. 학생들은 “뉴런이 실제 이렇게 생겼구나”라며 웃었다.

여성생명과학기술포럼과 로레알코리아는 2013년 미래 과학자를 꿈꾸는 여학생들에게 과학·연구 체험 기회를 제공하는 ‘사이언스오픈랩(Science Open Lab)’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부제는 ‘소녀, 과학자를 만나다’. 

올해는 10월 한 달간 토요일마다 전국 23개 연구실에서 400명의 여학생들이 실험에 참여하고 여성 과학자와 만나고 있다. 학생들은 ‘수면조절에 관여하는 뇌 회로 연구’, ‘식욕조절을 통한 비만·당뇨 치료 방법’ ‘암세포에 효과 있는 천연물 탐색’ 등 학교 수업에서 다루기 어려운 주제와 실험에 참여하면서 뇌과학·유전자학·면역학·약학 등 다양한 생명과학 분야를 접해볼 수 있는 기회다.

왜 여학생만 대상으로 한 프로젝트일까. 과학기술계 여성 과학자 수는 제자리걸음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우상호 의원이 국가과학기술연구회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올해 6월 기준으로 25개 정부출연연구기관 연구원 1만1446명 중 여성은 1080명(11.4%)에 불과하다. 2011년 9.8%에서 해마다 늘고 있지만, 증가폭은 0.3~0.4%포인트로 더디다. 국내 일반계 여고생의 이공계 진학비율은 35%, 전체 과학기술연구개발인력 중 여성 비율은 약 17%에 그쳐 과학분야에서 젊은 여성 인재 유입의 속도와 양이 적은 셈이다.

‘사이언스오픈랩’을 통해 지난 2년간 여성 과학자를 만난 학생은 여학생은 전국에서 480명이다. 2013년엔 12개 연구실에서 180명, 2014년엔 20개 연구실에서 300명이 과학·연구 체험을 했다.

이날 프로그램에는 15명의 여고생들이 참여했다. 오늘의 주제는 ‘자폐증’. 연세대 의대 엄지원 교수는 “뇌 질환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뇌가 퇴화하면 알츠하이머나 파킨슨병에 걸리고 뇌발달 장애가 있으면 다운증후군에 걸릴 수 있다. 뇌 관련 정신질환에는 우울증·조울증·게임중독 등도 있다. 엄 교수는 “뇌질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아직 부족하다”며 “감기에 걸리면 병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하듯이 우울증도 치료받아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늘 실험 주제는 자폐증과 관련된 유전자 연구다. 1985년에는 자폐증 환자 수가 2500명 중 1명이었지만 2009년에는 100명 중 1명이다. 

엄 교수는 “과거에 비해 자폐증을 진단하는 기술이 개발됐기 때문”이라며 “예전에도 그 정도 비율의 자폐증 환자가 존재했어도 자폐증이라고 진단할 수 있는 기준이 없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울증·강박증·스트레스증후군 등의 질환들은 특정 뇌의 문제가 생기는 메커니즘은 다 다를 것이지만 병원 가서 약을 탈 때 SSRI라는 하나의 약물을 받는다. 아직도 각 질환의 메커니즘을 모르기 때문”이라며 “이 약은 증상을 완화하는 것이지 치료하는 약물이 아니다. 뇌에 일어나는 일을 알아내는 것이 과학자들이 할 일”이라고 말했다.

본격 실험을 시작했다. 자폐증과 관련된 단백질 하나를 아크릴아마이드젤(젤라틴의 일종)에 넣어 전류를 통과시켜 단백질을 크기별로 분리하는 실험이다. 단백질의 크기·종류·농도를 확인하기 위한 작업이다. “시냅스 단백질은 1000종이 있는데 이 단백질 하나하나의 기능이 중요해요. 오케스트라가 공연하듯 조화롭게 기능을 해야 하는데 어떤 자극에 의해 기능을 잘하지 못하게 되면 문제가 생기는 것이죠.” 엄 교수는 “자폐증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며 “자폐증 환자들에게 발견되는 돌연변이 유전자가 있는데 그 유전자에서 발현되는 단백질을 추출해서 눈으로 보는 실험을 오늘 수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은 실험실에서 동그래진 눈으로 즐거워했다. 전북 익산 원광여고에서 실험을 보기 위해 올라온 박서린양(16)은 “눈으로 실험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고 말했다. 

전남 목포 영흥고에서 올라온 박예림양(17)은 “보통 강의를 들으면 남자 교수님들이 많은데 여성 교수님을 직접 뵙고 과학에 대해 강의를 들으니 좋았다. 롤모델로 삼고 싶다”고 말했다.

강혜연 연구원은 “고교 때 많은 경험을 해야 진로를 선택할 때 경험을 갖고 판단할 수 있다”며 “경험을 해야 시야가 넓어지고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눈에 보이는데 학생들에게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사이언스오픈랩’은 과학 교사 추천이나 자기추천서로 지원해 선발된 여고생들과 매년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로레알코리아 김은희 과장은 “프로그램이 끝나고 과학자들이 실제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됐다는 반응이 많았다”며 “과학자가 되고 싶다는 평소의 생각이 좀 더 확실해졌다고 말하는 친구들이 생겼다”고 전했다.

<글·사진 임아영 기자 layknt@kyunghyang.com>